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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) 우울함 한 컵, 무기력함 두 컵, 나머지는 무의미함으로 채워 넣었다.

우울함 한 컵, 무기력함 두 컵, 나머지는 무의미함으로 채워 넣었다. [2017.11.08] 삶이라는 큰 분류 중에 사람이라는 목록에 속해 있다. 삶이라는 큰 시간 중에 오늘이라는 하루를 살고 있다. 오늘이라는 세 컵보다 조금 긴 시간을 제목만큼 채워 넣었다. 매일 쓰는 재료들이라 남은 것들은 잘 밀봉하여 찬장에 정리하였다. 슬슬 새로운 재료들이 필요하였지만 손에 익은 재료들의 관성에 또 다시 다음으로 미뤄두게 되었다. 곧 더는 미루지 못할 시간들이 올 터였다. 그 시간들이 와서 우중충한 내 찬장을 화사하게 물들인다면 이 시는 지나간 어제가 되고 내 삶도 조금 평범해질 것이다. insta : lypi_isaak

시) 가시돋힌 날

가시돋친 날 내 감정이 가시가 되어 내 가슴을 뚫고나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뒤척이게만 하는 날 고슴도치 한 아이 가시를 눕히고 나에게 찾아와 내 품 안에 자리를 잡은 날. 그 아이가 너무 슬프게 보여서 다른 아이들 찾아올 품까지 내어주고 보니 정작 내 눈은 다른 아이들만 찾고 있는 날. 내 품 속의 이 아이 하나 온전히 품어주지 못하면서... 내 슬픔에 내치지도 못하면서... 내 존재의 방향이 혼란스러운 날. 이토록 슬픈 날 안아줄 그대가 필요했다. insta : lypi_issak

시) 첫눈

첫눈 매년 이 맘때쯤 우리 처음 만났던 그 곳에 첫눈이 내리면 전화를 주셨지요. 예쁜 달이 떴을때도, 봄비처럼 사랑이 올때도, 벚꽃처럼 사랑이 휘날릴때도, 아니주시더니 첫눈만 오면 당신은 내게 전화를 주셨지요. 어느새 난 겨울만 기다리며 살아요. 겨울이오면 당신을 처음 만났던 곳으로 달려가 첫눈만 기다리며 살아요. 그러다가 기다리던 첫눈이 내리면 미친 사람마냥 다 던져두고 오매불망 당신 전화만 기다리며 살아요. 난 이렇게 혼자인데 그대는 목소리만 남기고 떠났으니 전 어찌 사나요. 그대 목소리에 길들여져버린 내가 당신없는 계절들은 어찌 사나요. 달이 뜨면 예쁜 달이 떳다고, 봄비가 오면 사랑이 온다고, 벚꽃이 피면 사랑이 피었다고, 전화를 해주시길 바래보지만 당신은 항상 첫눈으로만 오시네요. insta :..

시) 나비

나비 그러니까 잔가지 가득한 그곳에 내려앉은 것은 한 마리 나비였다. 우리가 간절히 원하던 나비. 손을 뻗어볼까? 놓치면 어쩌지? 가만히 바라볼까? 날아가버리면 어쩌지? 우리가 안절부절 못하는 그 사이에 나비는 날아가버렸다. 그러니까 새싹이 돋아난 그곳에 내려앉은 것은 한 마리 나비였다.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나비. 이번엔 망설이지 말아야지. 이번엔 놓치지 말아야지. 잽싸게 움켜진 내 손 안엔 힘없이 부숴진 잔해만 남았다. 그러니까 잎사귀가 울창한 그곳에 내려앉은 것은 한 마리 나비였다. 우리가 아직도 원하는 나비. 이번엔 조심해서 잡아야지. 부숴지지않게 조심해서 잡아야지. 그물망 속에 갇힌 너무 아름다운 나비는 천천히 말라죽었다. 그러니까 꽃이 핀 그곳에 내려앉은 것은 한 마리 나비였다. 약하고 아름다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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